잡설2017. 8. 24. 16:47

집이 곧 공사에 들어간다.
지금 사는 집이 2001년인가 2002년인가에 이사들어온 집 이니까, 무려 15년 이상을 도배장판도 새로 안하고 살아왔던 집 이다.
오래간만이고, 아마도 지금 사는 아파트가 재개발이라도 들어가기 전엔 다시 수리를 할 일도 없을거라, 좀 크게 공사를 벌였다.
물론 시작은 개별난방 공사가 트리거 포인트가 되기도 했다.

그리고 어머니는 수십년간 끌어안고 사시던 물건들을 정리하기 시작하셨다. 마치 이사하면서 살림 정리하듯.
조금은 단촐하게 살아야겠다고, 안쓰는 것들은 이제 좀 정리하고 살겠다고.

퇴근해서 집에 들어와 보면 마대자루 하나씩 무언가가 담긴채 있다.
어제 그 마대자루에서 어린 시절에 어머니가 쓰시던 나무 경대를 발견했다.


그러니까 이런 것.
기억 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 까 싶다.
내가 아주 어릴 때, 증조할머니는 이런 경대 앞에서 쪽머리를 한올 흐트러짐 없이 손질하셨었고,
어머니는 화장대 위에 올려둔 이 경대의 거울을 보며 화장을 하셨더랬다.
이 경대를 보는 순간,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던 어린 나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런 기억이 떠오르니, 이 경대를 버리는 것이 마치 나의 기억 한조각을, 나의 과거 한조각을 잘라서 말소시키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이제는 거울도 뿌옇게 변해서 제대로 보이지도 않는 경대. 특별히 대단히 좋거나 훌륭한 그런 물건도 아닌 그냥 그시절의 흔한 경대 하나인데
내 기억이, 내 과거가 붙어있는 물건이어서였을까.
그냥 버리게 두지 못하겠더라.

그래서 사진을 찍고. 한번 손으로 매만졌다.



그리고. 페이스북에 글을 올렸다

"
엄마님이 집정리를 시작하셨다.
삼십년 이상 묵은 집안의 골동품들이 퇴출되고 있다.
근데 자꾸 내가 싸짊어지고 싶은 것들이 눈에 보인다..
어차피 안쓸것들이긴 한데, 어릴때 눈독들였던 물건(접이식 나무 경대.. 마나님 결혼할 때 사셨던 것 으로 추정) 이라던가, 어릴때의 추억이 남아있는 미키마우스 완전수동 빙수얼음 기계라던가..
빙수기계는 지켜냈는데, 경대는 못지켜낼 것 같고.
내가 보지도 못하고 놓치게 되는 물건들이 꽤 있겠지..
뭔가. 또 기억 한자락을 , 나 자신을 이루었던 것 중 한자락을 , 잃어버리는 느낌이다.
"

그렇게 생활폐기물이 될 뻔 했던 저 경대는
한페친의 집으로 가서 새 삶을 얻게 되었다.

어쨌거나
나와는, 우리집과는 이별.

이렇게 일별도 던지지 못하고 헤어지는 많은 사물들에게
그동안 잊어서 미안하다고. 고마웠다고 , 그렇게 인사라도 하고 싶다.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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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AgnesKi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