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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0.06.04 사진전 [골목 안, 넓은 세상]


조금 늦은 포스팅.
지난 오월 초. 현재 일하고 있는 고객사의 노조창립기념일인지 뭔지 하는 날로 .
남들 다 일하는 날 운좋게 휴일이어서.
트윗에서 어떤분이 알려주셨던 이 사진전에 다녀왔었다.
사진전 가는 길이라 하니 친구들 왈, "맥쿼리 그거 가냐" 라고들 물어봤지만.
난 사실 맥쿼리 전이 하고 있는지도 몰랐었..
뭐 나중에 맥쿼리 전을 가긴 했었지만 개인적으로는 이 전시가 더 좋았다.

꽤 오랜 시간 중림동 등 서울의 골목길들과 골목길 안의 풍경을 찍어온 故 김기찬 작가.
좋은 사진들은 구글링 하면 많이 나오니 각자들 찾아보시길.
사람 살아가는 냄새가 나는 사진전.
"사라지는 골목 이 아닌 살아지는 골목"을 발견하겠다던.
그런 작가의 시선이 느껴지는 사진전이었달까.

이미 끝나버려 조금 아쉬운.

아마 이런 사진이 맥쿼리 전이나 그런것 보다 내게 더 다가온것은.
내가 서울 사람이기 때문인 것도 있으려니.
남들이 고향을 말할 때.
나의 고향은 서울. 이라는 말 외에는 할 수 없는.
인생 첫번째 기억이
세돌 무렵 거대단지 은마아파트 입주하면서 이사들어가던 기억이니.
노란 택시에 외할머니와 엄마와 함께 뒷자리에 타고.
노란 주전자에 물을 담아. 그 주전자의 물을 쏟지 않게하라는 주의를 들으며.
이사갈 집으로 가고.
그 아파트 건물 1층에서
큰 외삼촌이 타고 오는 이삿짐 트럭이 늦는다며 기다리던 기억.
너무도 생생한 세돌 무렵의 기억.

그때의 서울은. 그리고 그 이후로도 한참동안.
서울은 지금과 달랐고.
서울은 변해버렸다.


다음은 故 김기찬 작가의 사진집 원고 내용이다. 91년.

나는 서울 사람. 나의 고향은 진정 어디에 있는 것일까? 어린시절 피라미나 붕어가 팔딱거리던 외가집앞 냇가였던가, 아니면 티없이 뛰놀았던 국민학교 운동장 이었던가, 또 아니면 광화문 비각 뒷골목 드럼통 몇 개 엎어 놓았던 대포집 이었던가?

어떻게 하면 내 고향에 되돌아 갈 수 있는건가?
어떨게 하면 마음 속 깊은 곳 지워지지 않는 고향에 머무를 수 있는 것일까?
600년 역사를 가진 고도. 천만의 인구를 가진 거대도시 서울. 궁궐과 성문 몇 개 빼놓으면 문화적 유산이라고는 없는 도시. 허지만 산과 강이 둘러쳐진 서울은 풍수쟁이가 아니더라도 자연 경관에 있어 세계 최고의 도시인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서울은 변했다. 손때 묻은 나무 전신주도, 헌집도 없어지고 모든 것이 새로 들어섰다.
길도 넓어지고 자동차도 많아졌다. 어린시절 개천가도 없어지고 강물이 보이던 언덕도, 괴물같은 아파트로 덮어버렸다.
우리는 건물 속에서 일어나서 버스 속에서 우리들의 아침얼굴을 보고 도시 속으로 들어간다. 길거리에는 광고만이 널려있고, 건물과 건물. 거기에는 산재해 있는 일들과. 만나야 할 얼굴들이. 건물 속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우리는 건물 속에서 헤엄치며 지하철 속에서 나의 모습을 본다.
그리고 언젠가는 여기를 벗어나 나의 고향에 꼭 돌아가야 한다고 뇌까려 본다.

어느해, 어느 날, 어렸을 적 아름답게 채색되었던 기억을 더듬으며 내가 뛰놀던 골목을 찾는다. 도심 한가운데, 빌딩 숲 그늘에 가려 보이지 않던 우리들의 고향의 모습이 떠오른다.
삶이 힘겹고, 딛는 땅이 비좁고 초라해도 골목안 사람들에게는 아직도 서로를 아끼는 훈훈한 인정이 있고, 끈질긴 삶의 집착과 미래를 향한 꿈이 있다. 이들은 깊이 뿌리 박혀 있는 생활전통을 골목안에 담으며 열심을 다 한다.

나의 고향 서울, 아직도 빛 바래지 않은 서울의 골목, 어린 시절 추억속의 골목. 마음의 고향이다.
친근한 얼굴들. 그들이 엮는 온정과 사랑의 이야기를 영원히 남기고 싶다.

- 1991. 초가을. 김기찬.
(강조는 내맘대로)

세살무렵부터 살아온 아파트에서.
복도식 아파트의 길쭉한. 한 층에 열다섯 가구가 모여살고 이어지던 그 복도는.
골목의 역할을 해 주었고.
그중 공간이 넓던 엘리베이터 앞의 조금 넓은 공간은
돗자리를 깔고 . 또는 신문지를 깔고 앉아
여름이면 수박을 나누어 먹거나 동네 아이들끼리 놀이를 하던 놀이터 이자 골목의 역할을 해 주었었다.

열쇠없이 집이 비어있을 때면 그 복도에 앉아
옆집 언니/오빠/아줌마/할머니와 놀았고. 잠들었다가 부시시 일어나 집에 들어가기도 했었다.
가끔 복도 난간 위로 올라 걸으며 위험한 놀이를 즐기기도 했었다. (무려 14층에서 )


그리고 고등학생때.
내 기억으로는 인생 두번째의 이사를 하게 되었고.
그렇게 가보니. 이제 모든 아파트 들은
효율과 전용면적과 그런 계산들로.
계단식 아파트들.
두집이 마주보는 그 작은 공간에는
한시도 이웃과 함께 할 이유도 없는.
다들 자신들만의 동굴과. 누에고치 속에 갇혀있는.
그런 괴물같은 공간이 되어버리고 있었다.


이젠. 앞집도. 윗집도. 아랫집도.
아무도. 모른다.
어린시절.
위층줄과 아래층줄과 우리층 줄의 45세대가
세개의 골목길을 나누어 가지고 살았었으나.
이젠. 한집도 모른다.

그래서. 더
김기찬 작가의 사진들이 즐겁고.
그 사진들이 잘났다는 맥쿼리의 사진보다 더 좋았고
그래서 사진집을 구하고 싶어졌고
저 원고가. 굳이 손으로 필사해서 메모해올 생각이 들 정도로
눈에 박혔었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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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AgnesKi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