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데 김밥이 특별한 음식에서 그저그런 끼니를 때우기 위한 가장 저렴한 분식거리가 된건 대체 언제부터였을까.'에 해당되는 글 1건

  1. 2012.02.16 라면에 김밥
잡설2012. 2. 16. 12:31


가장 간단한 밖에서의 한끼로 대변되기도 하는 라면에 김밥.

오늘 점심에 라면에 김밥을 먹다가 그런 생각이 들었다.

사실. 김밥은 참 특별한 음식이었다.
소풍을 가거나 하는 날이나 되어야 먹을 수 있는 음식 중에 하나였고,
아주 어릴적 기억에 의하면
오빠나 내가 소풍을 가는 날이면 어머니는 새벽부터 일어나 김밥을 말고 계셨다.
그때 살던 집은 부엌이 좁기도 했고 사실 김밥이라는게 손이 많이 가는 음식이다 보니
그 재료들을 놓을 공간을 생각하면 식탁위에서 김밥을 만들고 계신 풍경이 당연하기도 하다.

그렇게 어둑어둑한 이른 아침부터 어머니는 김밥을 말고 계셨고
소풍의 들뜬 기분으로 깨어난 나(또는 오빠)와 그 부시럭거림에 같이 일어나버린 오빠(또는 나)는
눈곱도 떼지 않고 식탁으로 모여가 어머니가 말고 있는 김밥의 속재료를 집어먹거나
자른 김밥중에 끄트머리 부분을 경쟁적으로 집어먹곤 했었다.

그렇게 특별한 음식이었던 김밥은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고
동네 아파트 상가 지하에 김밥집 - 무려 8시 이전에 문을 열고 김밥을 팔던 - 이 생기면서
어느순간 그 이후로의 소풍날은 아침에 상가에 들려 김밥을 사들고 가는 날이 되었더랬다.
(물론 대부분의 친구들은 집에서 싸온 김밥을 먹었던 것 같지만)


그리고 고3. 또는 고2.
편의점들이 대중화되던 그 시절.
그리고 본고사 모의시험을 보기 위해 어딘가 다른 학원 등지로 갔을 때
그때 편의점에서는 "삼각김밥"이란 것을 팔았고
300원 정도 하던 그 삼각김밥 두개로 밥을 "때웠"었다.


그리고 대학에 들어가고.
용돈이 넉넉치 않았고, 학생식당이 내가 주로 서식하는 자연대에서 꽤 멀면서도 겁니 비쌌던 학교를 다녔던 나는.
밥값을 아낀다는 명목으로 - 하지만 굶을 수는 없으니까. 대식가인 나에게 금식 또는 절식 등은 상상도 할 수 없다 -
교내 생협에서 판매하던 650원 짜리 김밥과 350원짜리 컵라면으로 일일 2식을 "해결"했었다.
 - 이떄의 김밥이 아마 지금의 김밥xx 이라는 이름이 붙은 체인들에서 판매하던 김밥과 가장 유사한 맛과 품질을 자랑할 듯 싶다.


김밥 전문점 체인들 - 김가네 김밥이니 하는 - 이 유행하기 시작하고
참치김밥, 치즈김밥, 누드김밥이니 하는 메뉴들이 생기고
그리고 그 김밥들은 보통 한줄에 3~4000원 정도 했던 듯 하다.
회사생활 초년도.
연봉 세전 1470만원이었던 나와
우리팀의 계약직 경리 여직원(기억에 연봉 800 가량)들과 함께 갔던 김가네 김밥에서
각자 김밥 한줄을 놓고 "맛있다"며 먹었던 기억이 있다.


이때까지도 특별한 음식이었던 김밥이
어느순간 가장 저렴하게 밥이라는 것을 먹을 수 있는 식사거리가 되어버렸다.
그러면서 더불어. 참 맛없는 음식이 되었다.

지인중 한 명이 그런 말을 했었다.
"난 김밥xx 들이 정말 싫다. 전국 김밥 맛의 하향평준화를 만든 장본인이다"


이제 나는.
그들이 맛 뿐만 아니라 그 특별함까지, 그 특별한 기억 까지 없애버린것은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든다.


오늘 점심으로 난 라면에 김밥을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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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AgnesKi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