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향 설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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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스트한곳 : http://www.idsolution.co.kr/?mode=ho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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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심미안과 감별력/감각이라.. 그닥.. 쿨럭.
취향 설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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딴건 다 좋다 이거야이쁘니까.
어지간한건 다 용서해 줄 수 있어.
이쁘니까 ㅋ
(중략)
그런데 말야
"...해서요, 우리 사장님께서 .....하신거에요, 그래서 코디오빠가......하셨어요...."
ㅅㅂ.....춤이랑 노래만 가르치지 말고 예절도 좀 가르쳐라.
"...해서요, 우리 사장님이 .....한거에요, 그래서 코디오빠가......했어요...."
이게 맞다.
[출처] 요즘 아이돌 그룹들 토크쇼 나오면 짜증나.|작성자 대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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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정권 후의 가장 성공적인 업적평가는 아마도 -" 많은 국민에게 웃음을 주었던 개그정권". 역시 진정한 유머는 유머를 말하더라도 당사자는 엄청 진지하게 말해야 한다는 것. 개그에 넘 열 받을 필요 없다는....
출처 : http://bit.ly/cWHlpH
썰렁함에 관대해지자 2006.01.15 18:02:47 야!한국사회
![]()
» 서민 단국대 교수·기생충학 초등학교 시절, 난 왕따에 가까웠다. 못생긴 데다 말주변도 없고 공부까지 못하는 나와 놀아줄 친구는 거의 없었다. 유머가 넘치고 여학생들에게 인기도 많은 친구들이 마냥 부러웠다. 더는 이렇게 살아서는 안 되겠다고 생각한 나는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좀 웃긴다는 애들을 따라다니며 유머를 배우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내가 유머의 길에 들어선 것은 외로움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처절한 몸부림이었는데, 그 당시 코미디언들 중 잘생긴 사람이 드물었던 건 나와 같은 이유에서 유머를 시작한 사람이 많아서일 것이다.신자유주의의 도래는 모든 것을 변화시켰다. 미남 개그맨 이휘재의 등장이 시사하는 것처럼, 이제는 잘생긴 사람들도 유머러스할 것을 강요받는다. 가수도 노래 대신 개그를 해야 하는 시대인지라 얼굴만 믿고 썰렁한 말만 하다가는 봉변을 당하기 일쑤다. <웃찾사> 같은 개그 프로에서 미남미녀를 보는 것은 더는 뉴스가 아니며, 박영규나 차승원같이 남을 웃길 하등의 이유가 없어 보이는 사람조차 유머 전문으로 전향한 지 오래다. “능력이 없는데 어떻게 웃기란 말이냐?”고 볼멘소리를 할 것이 아니라, 변화하는 시대에 자신을 맞추는 게 필요한 시점이다. 어린 시절의 내가 그랬던 것처럼, 유머는 이제 선택이 아닌 생존을 위한 필수요소가 돼버렸으니 말이다.
그래서일까. 미모는 물론이고 상당한 권력까지 가진 한 여성마저 이 대열에 합류했다. 개방형 이사제를 골자로 하는 사학법이 “빨갱이를 양산하여 나라의 정체성을 뒤흔든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이 추운 날 길거리에 나와 연일 시위를 벌인다. ‘명문대학’을 나온 그가 정말로 “사학법이 통과되면 전교조가 학교를 장악한다”고 믿지는 않을 것이다. 순전히 웃기기 위해서다. 유머의 첫 단계는 무식을 가장하는 것이고, 두 번째는 같은 말의 반복, 동음이의어를 사용한 개그는 그 다음 단계다. 엄격한 아버지 밑에서 자라 유머를 배울 기회가 없었던 그에게 두 번째 단계 이상을 기대하는 것은 지나친 주문이 아니겠는가.
유머는 재능보다는 노력으로 이루어지며, 일찍 시작할수록 효과가 커진다. 역시나 중요한 것은 조기 교육. 그렇다고 유머를 가르치기 위해 잘 다니던 태권도 학원을 그만두게 할 필요는 없다. 아이가 웃길 때마다 상을 내리는 등 최소한의 동기부여만 해준다면 아이는 스스로 웃기는 방법을 찾아나설 것이다. 이 과정에서 주의할 것이 있다. 아이가 썰렁한 얘기를 했다고 지나치게 나무라서는 안된다는 것. 그러니 웬만한 수준에 이를 때까지는 적당히 웃어주면서 그를 격려해 줘야지, 지나친 비아냥과 냉소는 좌절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이 원칙은 뒤늦게 유머를 시작한 어른들에게도 고스란히 적용된다. ‘사학법은 이 나라를 좌경화시키는 법’(1단계)이라고 끝없이 되풀이(2단계)하고 있는 그 여성에게 쏟아지는 작금의 비난은 솔직히 지나치다. 웃기는 데 실패한 사람이 돈을 떼어먹고 도망간 사람보다 더 지탄받는 게 말이 되나. 그에게 지금 필요한 것은 웃어주는 것. 혹시 아는가. 우리의 웃음이 그로 하여금 3단계로 나아가는 데 도움이 될지. 그처럼 유머만 빼고 모든 걸 다 가진 여인이 왜 웃기기까지 해야 되느냐고 혀를 차지는 말자. 원망해야 할 것은 그의 유머 부족이 아니라, 그로 하여금 유머 전선에 뛰어들게 만든 신자유주의다.
사족: 궁금해 하는 분이 있을까봐 적는다. 유머의 4단계는 애드리브(이건 밥상에 숟가락 하나 얹는 것에 비유된다), 5단계는 스토리가 있는 개그의 구사(밥상 차리기).
서민/단국대 의대 교수·기생충학
출처 :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95347.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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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온라인 활동을 그만 둔(그래서 출처 링크가 더 이상 가능하지 않은) 아는 분의 블로그 글 중 일부:
"한 사람을 진정으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의 좌절된 욕망을 알아채야 한다. 모든 사람은 그것을 가지고 있다. 간절하게 바랬지만 결국 가질 수 없었던 그 무엇. 그리고 비참한 삶의 궤적들. 입시에서의 실패. 처절한 실연. 지겨운 가난. 부자유스러운 신체. 아무도 돌아보지 않는 외로움. 이처럼 모든 사람의 삶에는 필연적으로 어떤 좌절들이 존재한다. 어떤 것들은 태어나기도 전에 이미 결정되어 있거나, 그것을 어떻게 해보기에는 너무 어린 시절에 모든 것들이 끝나버린다. 그것은 한 사람의 자아에 깊은 상흔을 남긴다.
드라마는 거기서 끝나는 것이 아니다. 비로소 시작한다. 그 좌절된 욕망을 어떤 식으로 다루느냐가 그 사람의 삶을 결정하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을 끌어내리거나 탓하는 것은 가장 손쉬우면서도 간단한 선택지다. 애초에 진정으로 원한 것은 자신의 상승 혹은 변화였다. 하지만 그것이 불가능하거나 힘들다고 판단되자, 나에게 없는 것을 가진 누군가가 미워지기 시작한다. 이것은 거의 노력이 들지 않으며 마음 또한 편안하다. 수많은 소문과 험담은 그렇게 좌절한 소문생산자들의 무의식을 반영한다. 뭔가 구린 게 있을 거야. 사실 걔 XX래. 젊었을 때 XXX를 했대. 웃겨. 주제에. 내가 올라갈 수 없으면 누군가를 끌어내리면 된다. 낙차를 극복하는 가장 빠른 방식이다.
이것을 보면 왜 학교가 그토록 심각한 폭력과 질투와 불신이 난무하는 사교의 정글인지는 명백한 일이다. 학생들 개개인은 혼자서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제도의 부조리를 제각각 짊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학교를 나가기에도, 그렇다고 한 계단을 오르기 위해 어마어마한 시간과 노력과 돈을 부어야 하는 피라미드를 오르기에도 그들은 너무나 버겁다. 혹은 자신들을 부당하게 대하는 성인들에게 맞서기에도 시스템은 너무나 공고하다. 그래서 그들은 옆에 있는 동료를 물어뜯는다.
조금 덜 간단한 것으로는 색다른 일에 몰두하면서 그 쓰라림을 잊는 방법이 있다. 술, 도박, 여자... 좀더 친숙한 것도 있다. 만화, 영화, 게임, 쇼핑... 수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오타쿠가 된다. 오타쿠란 별 게 아니다. 꼭 뚱뚱하고 못생겼으며 애니메이션만 보면서 옷 못입는 남자를 말하는 것도 아니다. 목적없는 성장이야말로 오타쿠의 본질이다. 그들은 박학다식해지고 테크니컬해지며 남다르게 변한다. 하지만 목적은 없다. 따라서 성취도 없다.
오타쿠 문화가 곧 루저의 동의어인 것은 우연이 아니다. 아무리 옷 잘입고 애인 있는 오타쿠라도 그의 심오한 취미 기저에는 뿌리깊은 좌절이 존재한다. 바다건너 누군가의 이론에 탐닉하는 지식인과 매 시즌 유행을 빠삭하게 꿰는 신상녀와 방구석에서 게임에 몰두하며 중독에 빠져드는 십대 소년과 서구 예술영화의 계보를 줄줄이 꿰는 씨네필과 알콜중독자 사이에는 하나의 공통점이 있다. 그들은 자신의 마음 속 깊은 곳에 있는 좌절된 욕망, 그 야수와 싸우고 싶지 않기 때문에 엉뚱한 곳에서 자신을 증명하려 애를 쓴다. 그는 영원히 자신을 증명할 수 없다. 원래 되려고 했던 것도 될 수가 없다. 아니, 무언가가 되려고 했다는 사실조차 잊어버린다.
좀더 적극적인 사람들은 좌절된 욕망을 실현시키려 안간힘을 쓴다. 그들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과거의 실패 혹은 자신의 불리함을 만회하려 한다. 그 과정에서 약간의 속임수 내지는 협잡쯤은 생길 수도 있다. 누군가를 밟고 올라갈 수도 있으며 가까운 사람들을 실망시킬 수도 있다. 그들은 자신의 소중한 것을 매매하고 타인의 고통에 둔감해지며 서서히 본래의 인간성을 잃어간다. 하지만 결국 기어코 자신이 원하는 것을 성취한다.
그렇게 무언가를 성취한 사람들은… 대개가 깨닫는다. 이 산이 아니었는데. 하지만 돌아가기에는 너무 늦었다. 돌아가려 해도 이미 자신이 변해버렸기에 어디로 돌아가야 하는지도 알 수가 없다. 그곳에 오르기까지 그들은 너무 많은 댓가를 치렀고 그곳에 있기 위해서도 계속 댓가를 치러야 한다. 그리고 이미 다른 선택이 있을 수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것조차 불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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