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설2010. 11. 10. 10:26

어제 밤에 갑자기 생각이 났다.
어릴때 쓰던 아니 정확히는 복학할 때 까지 쓰던 책상이.

어릴때 살던 집은 그집으로 이사가는 기억이 내 인생의 거의 첫 기억일 만큼 어린시절부터 살던 집이었고
방셋짜리 그 아파트에서 아주 어릴때는 오빠와 같은 방에서 지냈으며
안방을 제외하고 다른 방에는 아버지가 쓰시던 책상이 있었다.
커다란 나무책상.
어두운 호두나무색(으로 기억되는)의 커다랗고 네모반듯한.
요즘처럼 서랍장이 분리되는 책상이 아닌, 책상에 서랍장이 붙어 있던.

그리고 조금 지나. 아버지의 방은 사라지고 그 공간에 "내 방"  이라는 공간이 생겼고.
그 책상을 놓으면 이부자리를 펼 공간. 그리고 약간의 나의 물건들을 그 방에 넣기에는 방이 조금 작아서
그 책상은 (좀 더 넓은 방을 쓰던)오빠의 책상이 되었었고. 나에겐 아마도 그 당시 보루xx 등의 가구사에서 판매하던
학생용 책상(사실은 책장과 서랍장이 존재하고 상판 하나를 그 높이를 맞추어 얹어서 만들었던)이
첫번째 책상이 되었었다.
"베니다 합판"이라고 부르던(아마도 "베니어 합판"이라는 표현이 정확한 표현이었을 것 같지만) 목재에
검은색 칠을 하고 위에 통유리를 얹었던 책상.
고등학교 1학년 초. 아마도 열일곱살이 되기 까지 "공부가 참 재미있어요"라는 생각을 하던 시절의 책상은 그랬다.
한참을 생각해도 잘 기억나지 않는 그저 도구로서의 책상.
(그리고 아마도 계속 아버지의 책상에 호시탐탐 눈독을 들였기 때문에 더 기억이 안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이사.
내 방은 예전 방의 두배 이상 넓어졌고.
그리고 그때부터 아버지의 책상은 내 책상이 되었다.

호시탐탐 노리기만 하던.
따뜻한 나무의 질감이 느껴지던 그 책상.
어쩌면 내 나이보다, 오빠의 나이보다 더 오래되어 반질반질 윤이 나던 그 나무책상.

그 책상은 스물 세살 정도까지.
어쩌면 꽤나 폭풍같았던 시기를 나와 함께 했고.
그 책상에서 밤을 새며 공부를 했고 친구에게 편지를 썼고
홍익문고에서 심혈을 기울여 골라 사온 이천원짜리 (떨이)도서들을 읽었고
내 방에서 가장 좋은 공간에 놓여서 내 방의 중심과. 나의 중심을 잡아줬었다.
방문을 열자마자 보이는 책상의 모습만으로 안정감을 주었던 내 책상.

그리고 또 다시 이사.
내 방은 첫번째 방 보다도 약 30%정도 좁아졌고.
집안 어느곳에도 그 책상을 둘 수 있는 방은 없었다.
그렇게. 그 책상은 사라졌다.

그리고 그 뒤로 몇번의 이사.

회사를 다니면서.
연차가 올라갈 수록 점점 더
책상은 그저 PC를 놓기 위한 공간이거나 무언가를 얹어놓는 가구일 뿐이 되었고
집에 있는 시간에서 잠자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거의 90%의 시간을 함께 하던 "나의 책상"과는 달리
이젠 집에 있는 시간의 약 10% 정도만 함께 하는 책상이 되었다.(게다가 집에 있는 시간도 점점 줄고 있다)


그리고 어제 밤. 갑자기 그 손때 묻은 책상이 생각났다.

사진이라도 한장 있었으면 좋았을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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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AgnesKi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