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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2.08.29 1997.
잡설2012. 8. 29. 10:28

요즘 "응답하라 1997" 이라는 드라마가 꽤나 유행인가보다. 

한번도 본 적 없지만, 많은 사람들이 열광하고 있는 - 내 주변 만인지도 모르겠지만 - 것이 보인다. 


드라마 내용은 잘 모르겠다. 

사실 드라마를 잘 보지도 않고, 챙겨볼 여력도 정성도 없다. 


그래도 궁금은 해서. 홈페이지에 들어가 봤다. 




"지금은 돈에 찌들고 세상에 찌들어 하루하루 구질구질 하지만, 이들의 90년대는 더 없이 찬란했다" 라. 


나의 90년대.

그리고 나의 97년도. 


나에게 90년대는 찬란했던가? 아니. 나에겐 외려 00년대가 더 좋았고 그리고 지금이 좋다. 

누가 나에게 90년대로 돌아가고 싶냐고, 돌아갈 기회를 주겠다고 한다면.

전혀. 아니. 난 싫다고 그냥 여기 이대로 있겠다고 하겠다.





1. 97년도. 


대학생이 둘 이었던 우리집에서 오빠가 복학을 해야하던 시점. 

그리고 나는 휴학을 했었고.

신x에xxx 이라는 업체의 행사 안내 단기 콜센터 알바를 비롯해서 알바를 전전하던 시절. 

휴학생에게 사무보조 알바는 거의 낙첨되지 않았고 - 대부분 고졸 또는 전대졸의 장기직을 원했던듯 싶다 - 

과외는 그 전까지는 있었지만 하필 이때는 과외자리도 들어오지 않았고 

이런저런 알바소개 업체 등을 통해 들어왔던 알바란 

대부분이 백화점 판매직 및 저런 행사 관련 항목들이었고

장기적이고 정기적인 수입이 필요했던 나는 에xxx 라는 놀이동산에 계약직으로 들어가서 약 육개월 이상을 - 아마도 구개월 정도를 - 일했었다. 

일했던 곳은 주로 주차장. 톨게이트. 사거리. 그리고 마지막에 편의점. 

지금도 내 피부가 검은편이라고는 생각지 않지만. 그때는 모자를 눌러쓰고 땡볕에서 열두시간 이상을 일했었기 때문에

안경 아래부터 티셔츠 위까지, 그리고 반팔셔츠가 가려주지 않는 곳들은 시커멓게 탔었고

햇볕알러지 라는 병을 얻(?)었었고

그렇게 일해서 한달에 백만원 남짓한 돈을 겨우 손에 쥐었었고 

그렇게 일해서 - 그렇게 일하다 보니 돈을 쓸 일이 거의 없어서 겠지만 - 일을 마치고 나니 칠백만원 정도의 돈이 수중에 남았었다. 

남들처럼- 이라고 해봐야 그 당시 내 주변의 친구들 이었겠지만 - 어학연수나 배낭여행을 가고도 싶었지만 뭐. 안될 일이었고

복학할 즈음엔 그 전에 살던 집의 절반만한 집으로 이사를 했었다. 

그랬던 97년도 였었다. 


같이 그 일을 시작했고 같은 파트에 있던 "동기" 들 중에서

아마도 단 한명을 제외하고는 그 전에 다들 그만두었었고 

그들이 그만 둔 이유는 "소모되고 있다" 라는 부분이었다. 


"한국의 워킹푸어" 라던가 "사천원 인생" 이라는 책에서 나왔던 바로 그 느낌들. 

그저. 삶의 쳇바퀴에서 내려갈 수 없고, 거기에 대해 인지할 만큼의 정신적 육체적 여유도 없는 생활을 견디기 힘들어했던 그들과 그걸 받아들여 일해야 했던 몇몇들. 

그리고 에XXX에 "놀러오던" 사람들에게 주차장에서, 사거리에서 수신호를 하고 있던 "우리"들은 "사람"이 아니었던 기억. 


뭐. 나에게 97년은 그랬다. 



2. 97년 이후의 90년대. 


복학하기 전. 아직 휴학중이던 그 때.  

IMF 라 통칭되던 외환위기라는 것이 터졌다. 

졸업반이던 내 오빠는 운좋게도 그 전에 취업이 확정되었었고 다행히 그 회사는 신입사원들에 대한 입사보류 내지는 취소 처리를 하지 않았었다. 내 오빠의 친구들은 몇몇 입사취소 사태에 휘말려 버렸었지만 .


그리고 복학. 

그 전까지는 "학문의 의미" 니 하는 소리를 하며 학교를 다녔던 나는.

당장 졸업학기지만 졸업 이후가 불투명할 동기들을 보았고 

(그 전 까지는 아니었으나 이후로는) 지상최대 과제(가 되버린)인 "졸업 후 청년백수 대열에 들어가지 않기"라는 미션을 향해 달리게 된다.  뭐 그래봐야 학점 정상화(?) 가 절대 다수였지만. 

지루하고 또 왜 알아야 하는지 알 수 없던 "해석학" 등의 1,2학년 과목에 비해

그 이후의 "선형대수"라던가 "시계열"이라던가 "회귀분석"이라던가 "표본조사론" 등은 뒤늦은 공부에의 열정을 불러주기 까지 했었다. 


어찌어찌 드럽게 비쌌던 등록금을 겨우겨우 다 내고 

매일 밤 10시까지 도서관에서 지내며 

모아두었던 돈과 기타 중간중간 간단한 알바들로 지냈던 학부시절. 

생협에서 팔던 한줄에 650원짜리 김밥과 350원짜리 컵라면으로 하루 두끼를 먹던 그때. 


그게 나의 97년 이후의 90년대였다. 



3. 97년 이전의 90년대. 


95학번인 나는

고딩때는 클래식기타 동아리에 들어가서 기타를 치는 것과 하교길 홍익문고에서 주저앉아 책을 보다가 천원 이천원짜리 책들 중에 간혹 보석같은 책을 발견해서 사들고 가서 보고 보고 또 보는 것이 낙 이었고

그때도 연예인등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다. 

그리고 조용하지만(사고는 안치지만) 성적은 하향곡선을 그리고 있었고 공부는 그닥 열심히 하지 않고 그때 막 유행하기 시작했던 "원두커피 전문점"에서 천 몇백원짜리 커피한잔을 놓고 서너시간씩 수다를 떨고 뭐 그렇게 지냈었다. 


그리고 입학. 

대학생이 된 이후로 급격히 공개된 여러 사정들. 

나쁘지 않은 학교를 들어간 덕에 과외라는 알바를 조금 과하게 뛰었고

몇몇 친구는 "무슨 생계형이냐-"는 핀잔을.. 그들은 농으로 했겠지만 사실이 그랬다던. 

대학공부는 "이게 무슨 대학공부인가" 싶은 수업과 수업분위기로 겉돌았던. 

그렇게 왕복 네시간의 통학시간과 더불어 알바와 토닉소주와 "주일학교 교사"라는 활동으로 후다닥 흘러갔던 96년까지의 시간들. 





화려하지 않았던. 구질구질했던 나의 90년대는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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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AgnesKi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