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미/독서기록2019. 6. 30. 00:39




[ “시오...... 우린 역시 여기서 상처를 받았었나봐.”
마음속 풍경과 바깥 경치는 연결되어 있다... 직감적으로 그렇게 느꼈을 때처럼 나는, 붕대를 감으면 마음이 가벼워지는 까닭은 상처가 나았기 때문이 아니라 ‘나는 여기서 상처를 받았다’라고 인식하게 되고, 나 아닌 다른 사람들도 ‘그건 상처야’라고 인정해주는 과정을 거치게 되어 마음이 편해지는 게 아닐까, 하고 생각했다.
“이름이 생긴 거야, 시오. 우울했던 일, 납득이 안 갔던 일, 못 참을 일이라며 마음에 쌓아두었던 일들. 그 감정에 붕대를 감았더니 이름이 붙은거야. ‘상처’라고 말야. 상처받으면 아프고 누구나 침울해지는 게 당연해. 하지만 그래봤자 상처일 뿐이니까, 치료하면 언젠간 분명히 낫는 거잖아.” ] - page 74

소설에 밑줄긋기는 참 오래간만이다.
한편으론 얼마전 티브이에서 김영하 작가가 했던 말이 생각났다. 글쓰기 강의에 가면 “짜증나” 라는 말이 금기어라고. 다양한 감정들을 들여다보고 해석하고 표현해내야 하는 작가에게 “짜증나” 라는 단어는 모든 것을 퉁쳐버리는 아주 나쁜 표현이라고. 너무 많은 해석의 여지가 있는 표현은 글쓰기에서 매우 나쁜 표현이라고.
내가 무언가를 감정들을 한참을 수첩에든 무엇에든 쓰고나면 피곤해지고 또한 더 잘 잊는 것은 그나마 그 감정을 더 들여다 보고 이름붙이기를 했기 때문은 아니었을까 싶기도 하다. 아니면 뭐라도 이름을 붙이지 못하면 견딜 수 없었거나. 누구에게도 공감이나 동의를 받지 못해도 나만이라도 그 감정과 슬픔과 분노와 상처에게 이름을 붙여주면서 붕대를 감았던 것 일수도. 치료받진 못해도.


[ 한창 장마철이었는데도 하늘은 쾌청하게 맑았다. 리스키와 내가 졸업한 초등학교로 가서, 친구와 백엽상 앞에서 절교한 뒤로 십년이상 서로 연락을 하지 않았다는 아이를 위해, 백엽상에 붕대를 감고 그 앞에서 나와 리스키가 붕대를 감은 손으로 악수하는 장면을 촬영했다.
같은 초등학교에서 사육당번이었는데 애지중지 키우던 토끼가 죽어버렸다눈 아이를 위해서는, 사육함을 붕대로 한바퀴 빙 두르고 마침 놀러온 초등학생들을 불러서 그 오두막 앞에서 지금 키우고 있는 토끼를 품에 안겨주고 사진을 찍었다.
단시오와 기모가 졸업한 초등학교에서는 아프신 어머니께서 사주신 거라 더욱 아끼던 신발을 자기를 괴롭히던 친구들이 감추어서 속상했었다는 아이를 위해, 우리 네 사람의 신발을 다 벗어 붕대를 감아 그걸 학교 이곳저곳에 놓고 촬영했다.
턱걸이를 한번도 못하자 선생님한테서 저 살이 오죽 무겁겠느냐는 비웃음을 받고 다른 학생들도 죄다 따라 웃은 날 이래로 아직까지 사람들에게 나서기가 무섭다는 의뢰인을 위해서는, 철봉에 붕대를 칭칭 감고 그 끝은 허공에 띄워 놓고 옷으로 바람을 일으켜서 하늘로 날아오르는 장면을 찍었다.
그리고 집에 가는 길에 등을 떠밀려서 배수구에 빠졌던 일이 지금도 분해 죽겠다는 아이를 위해서, 디노를제외한 나머지가 배수구에 나란히 들어가서 흐르는 물에 붕대를 띄워놓고 한사람 한사람의 발에 엉킨 모습을 촬영했다. ] - page 184~185


모든 것은 결국 작가의 연출이고 상상력이겠지만 이 대목을 읽는 그 순간만은 이런 연출을 생각해낸 이 아이들이 부러웠고, 진심으로 위로해주기 위해 애쓰고 있다는 점에서 고마웠다.
애도하는 사람 때도 그렇지만, 이 덴도 아라타 라는 작가는 사람들의 슬픔과 아픔에, 상처에 집중하며 안아주려고 하는 그런 작가라는 느낌이 든다.
미미여사님과는 조금 다른 결을 지닌 작가지만,
둘다 세상에 대한 애정이 가득 하다는 점만큼은 완벽한 공통점일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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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AgnesKim